선명한 데이터, 명확한 합의
위기가 있으면 항상 변화가 찾아옵니다. 위기가 거대하면 개인을 넘어 인류 차원의 적응이 시작되고요. 생존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거죠. 그런 노력이 기존에는 있기 어려웠던 거대한 투자를 독려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트엔진이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GPS등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했던 투자의 산물이지, 민간기업이 수익을 노리고 개발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하는 기술이 사람을 죽이는 기술에서 출발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전쟁을 통해 문명이 발달하다니 인류사의 커더란 아이러니입니다. 거대한 위기에 따른 우리의 대응이 문명을 발달 시키는 촉매가 된 것입니다.
이번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도 mRNA 백신을 적용해 신속한 백신 개발 및 대량생산이 가능했습니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백신을 개발해 사용화한 것도, 엄청난 위기가 닥치면 그에 버금가는 투자를 하는 게 우리 인류사에 합의돼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굳이 이렇게 의미부여를 하는 이유는, 모든 바이러스에 인류가 지금처럼 대응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1976년 처음 발견되었지만 30년 넘도록 이렇다 할 백신이 없다가 2017년에야 효과성 있는 백신이 나왔습니다. 치사율이 매우 높은 심각한 질병이지만 바이러스의 피해를 입는 지역이 주로 서아프리카 한정되었고, 불행히도 경제적으로 낙후된 나라들이어서 백신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선진국에 있는 이들에게는 위협적이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그 이유로 나에게 체감이 안 되었기 때문에 투자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적으로 움직여 선진국들도 심각한 타격을 입으니 단기간에 거대한 자금이 투자되면서 불과 1년 만에 인류는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된 거죠.
이 밖에도 코로나라는 크나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과를 입증하기까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가설을 세우고 하나씩 실험한 다음 그 결과를 보고 결론을 낸다면 더 확실하겠죠? 그러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시간이 없어요. 이렇게 급박한 상황이 되면 시도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기반으로 유추하는 형태로 가기 마련입니다. 과거 및 현재의 데이터를 토대로 성공 확률을 높이는 작업입니다.
즉 시행착오를 거칠 시간이 없을수록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과 이성적 사고입니다. 기존에 축적된 과학기술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성공 확률을 높이는 이성적 사고가 필수입니다.
러던에 콜레라 창궐 이후 존 스노우 박사가 역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세균의 존재도 몰랐지만 데이터를 통해 상수도가 원인이라는 것을 유추해낸 데에서 출발합니다. 우리의 희망인 백신도 아시는 대로 천연두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막기 위한 제너 박사의 종두법이 출발점이었어요.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의 위대한 업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류가 생존을 위해 투쟁해온 역사에 남은 시행착오의 집합체로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효과성을 유추한 것입니다.
아울러 공통의 합의를 이끌어낼 쉬운 설명 또한 필수입니다. 거대한 혁신이 이루어지려면 협업이 필요한데, 협업이라는 건 정서적 공감만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전체 인류가 의사소통을 통해 각자 가지고 있는 지성과 지식을 합쳐야 하므로 논리적 설득이 요구됩니다.
이를 단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예제로 오른쪽의 아름다운 다이어그램이 있습니다. 일명 로즈 다이어그램이라 불리는, 데이터 분석하는 이들에게는 꽤 유명한 그림입니다. 누가 만들었냐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이에요. 이분을 한국에서는 어릴 때 읽었던 위인전의 영향으로 대개 ‘백의의 천사’라 기억하는데, 사실 이분은 통계학자이자 전략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크림전쟁 당시 야전병원에서 일하며 어떤 이유로 청년들이 상망하는지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투 중에 부상을 입어 즉시 사망하는 사람도받 후송된 병원에서 질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위생이라든지 야전병원에 대한 지원이 매우 열악해, 중상이 아니어도 처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2차 세균감염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던 것입니다.
이를 관찰한 나이팅게일은 전쟁터의 무기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병원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더 많은 인명을 구 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어떻게 입증했냐고요? 실제로 창고를 부수어 물자를 꺼내고, 여러 독지가 및 본인의 사재를 털어 의료시설에 투자하여 사망자가 드라마틱하게 감소한다는 결과를 도출한 것입니다.
이분은 이 사실을 입증할 뿐 아니라, 그 결과를 알기 쉬운 그림으로 만들어서 영국 본토에 보냈습니다. 차트의 각 꽃잎은 매달 전쟁터에서 사망한 숫자를 나타냅니다. 꽃잎 가장자리의 넓은 부분은 질병에 의한 사망자, 안쪽은 부상에 따른 사망자, 나머지 중간 부분은 기타 원인으로 사망한 사람을 뜻합니다. 질병 사망자가 얼마나 많은지 한눈에 드러나죠.
이 차트를 본 영국 의회와 국민들은 당연히 야전병원 투자의 필요성에 공감했습니다. 별것 아닌 자원을 넣은 것만으로도 청년들의 소중한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그 투자가 합당하다는 민의가 수렴된 것입니다. 덕분에 자원이 투입되고, 현대보건학의 기틀이 만들어졌다는 아름다운 일화입니다.
이 그림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인과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무엇이 인풋이고 무엇이 아웃푼인지 이해한다면, 인풋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웃풋을 교정하거나 변화시킬수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다시 말해 사건이 일어났을대 그에 대해 정서적으로만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판단해 어떤 환경이나 행위를 바꿔야 미래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지 과학적으로 추론한 것입니다.
둘째는 인과를 증명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이때는 ‘쉽게’ 전달한다는 게 특히 중요합니다. 복잡한 도표와 논리로 만들어진 논문으로 전달한다면 소수의 전문가만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러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정받더라도 전체 사회의 자원을 사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공감하지 못한 대다수의 합의를 이뜰어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고 쉬운 형태로 정보를 표현하는 방식이 소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합의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를 최근에는 데이터 비주얼라이제이션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정의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 정말 훌륭한 사람은,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는 사람이에요. 많은 산업 또는 학문 전가들이 그들 사이에 통용되는 나름의 언어를 만들고, 그들끼리는 쉽지만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그리고 정말 나쁜 사람은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합니다. 상배방의 무지 혹은 정보의 격차가 자신의 헤게모니를 키워주기 때문에 일부러 못 알아듣게 말하는 거에요.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할 수준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면 자신이 아는 것을 좀 더 쉽게 설명해서 전체 합의가 가능하도록 해야함을 나이팅게일은 한 장의 차트로 보여주었습니다. 과학기술과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쉬운 설명, 이러한 설명방식이 앞으로 상당 기간 우리를 매료시키지 않을까요?
[Study] - 세일즈가 빛을 발해야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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